페르가나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임기를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괜찮지는 않을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을 해도 그 끝은 그녀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것이어서 어제 하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는 연락도 받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월요일 밤에 타슈켄트 공항에서 그녀를 배웅하고 화요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혼자 임지로 돌아오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사실 그녀는 멀리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혼자 기차를 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돌아가면 페페샘이 페르가나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지방에 배치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 나눌 사람 없이 혼자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으로 내 임지가 지방이란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없다고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아서 자책하니 옆 도시의 샘이 '마음 맞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견딜 수가 있는 건데 지금 샘은 가족과 같은 사람과 헤어진 것 아니냐, 힘든 게 당연하다'고 위로해주셔서 자책하는 건 멈출 수 있었다.
한 번도 페페샘을 언니라고 불러본 적 없었지만 (영월에서 국내교육 받을 때 단원 간에 '언니, 오빠'와 같은 친족 호칭은 쓰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받기도 했고 페페샘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상상이 안 되기도 하며 아마 그렇게 불렀다면 내가 더 철없이 굴었을 것 같다.) 은연중에 페르가나 이웃, 친구를 넘어서 가족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와의 이별이 다른 어떤 이별보다도 더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조금 덜 생활을 공유할 것을.......' 하는 후회도 들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행복했던 추억으로만 남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런 좋은 기억을 남겨준 페페샘한테 고맙고 또 너무 의지한 것만 같아서 죄송하기도 하다. 낯선 곳에 와서 이렇게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샘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고백한다.
샘,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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