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Uzbekistan (2016.12.13 ~ 2018.12.13) 14

2018.01.30.~2018.02.04.

안전교육 + 비자 연장 때문에 타슈켄트에 다녀왔다. 30일 자정이 다 돼서 유숙소에 도착했고, 2월 4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페르가나에 돌아왔으니 실제로 타슈켄트에 있던 기간은 나흘. 3일만에 비자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었던 나흘이었다. (설명) 예전에 쓰던 공책을 찾다가 우연히 단원 2년차 때 적은 일기장을 찾았다. 내가 이런 내용을 썼구나 싶어서 웃긴데, 이것도 기록이니 블로그에 나마 뒤늦게 기록한다. 단원 때 나는 비자가 더 늦게 나오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16시간 40분 출발 지연

겨울방학 기간에 맞춰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징징 거리는 나에게 친구는 “이 상병, 복귀하지마!”(KOICA 봉사단원 임기가 공군 임기와 같다면서 이 친구는 내가 출국하는 그 날로 ‘전역일 계산기’ 어플을 다운 받았다. 현재 나는 국방부 시계로 ‘상병’이라고 한다.)라며 복귀를 말리기도 했지만, 결국 돌아왔다. 마음은 불편해도 몸이라도 편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돌아오는 길은 참 험난했다. ​인천->타슈켄트: 16시간 40분 지연 😂 ​15시 30분에 떠야 했던 비행기는 ‘타슈켄트 공항에 안개로 인해 출발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방송만 한 시간을 반복하더니 결국 다음 날 오전 8시 10분에 출발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우리에게 생간 거냐며,..

빈자리는 언제나 크다

페르가나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임기를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괜찮지는 않을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을 해도 그 끝은 그녀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것이어서 어제 하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는 연락도 받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월요일 밤에 타슈켄트 공항에서 그녀를 배웅하고 화요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혼자 임지로 돌아오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사실 그녀는 멀리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혼자 기차를 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돌아가면 페페샘이 페르가나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지방에 배치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 나눌 사람 없이 혼자 견뎌야..

익숙해진다는 것

서울대 2B 15과 제목이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어요'이다. ​ 애들한테 본문 대화를 설명하고, 외우게 시키고, 상황극을 하게 한다음 선생님한테도 너네가 질문해보라고 하니까 2B 반의 에이스인 라므스벡이 "선생님,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는 것이 어때요?"라고 물어서 본문을 살짝 변형해서 "처음에는 우즈벡어를 몰라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우즈벡 문화를 잘 몰라서 고생했는데 지금은 좀 이해하게 되었어요." 라고 답했더니 애들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애들한테 듣기 좋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이곳에,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이제 영어보다 우즈벡어가 먼저 튀어 나오고, 여전히 타슈켄트에서는 2배 넘는 돈을 내고 택시를 타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동부 지역에서는 현지인들과 똑같은 돈..

무제

#1 : 외로움 평소에 '외롭다'는 생각은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일주일 넘게 여행을 하며 단원들을 만나고 내가 있는 곳에 돌아오니 '외로움'이 물밀 듯이 덮쳐 온다. 개강 후에는 또 새로운 학생들에 치여(?)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찾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 외로운 마음은 어찌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저 느끼는 대로 놔두는 수밖에. #2: 결혼한 학생 집에 다녀오다 에 출전했던 학생 중 하나가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꼭 가고 싶었는데 서부 여행 일정과 겹쳐서 가지를 못했다. 학생들이 집 초대를 많이 하는데 부담스러워서 평소에는 거의 응하지 않지만 결혼식에 가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혹시나 내가 가면 시댁 식구들한테 좀 더 예쁨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행에서 돌아..

❤️

​# 임지 파견 이후 처음으로 여자 동기샘들을 만났을 때 사마르 A샘 : "우미다(내 우즈벡 이름) 뭐 먹고 싶어? 우미다가 먹고 싶은 거로 골라~" 나: "아니, 샘들도 지방에서 왔는데 샘들이 먹고 싶은 거 골라요." 사마르 B샘: "우린 사마르에서도 한식 먹을 수 있어~ " ​# 수도 샘들 집에 가서 얘기하다가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벌어지는 일 1. 나: "아, (새까맣게 탄 팔을 보여주며) 한국 가면 팔토시 사와야겠어요." 타슈 C샘: "나 팔토시 두 개 있어!!! 하나 줄게." (방으로 들어감) 나: "아니, 저, 괜찮은데......." 사마르 A샘: "나도나도! 나 집에 팔토시 많아!!! 내가 줄게!!!!" 타슈 C샘: "니는 니네 집(사마르칸트)에 있는 거잖아. 내가 줄게, 내 거 가져가! 이..

벌써 1/4이 지났다.

얼마 전 1차 반기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남은 날을 따져 보니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조기 귀국을 한다면 1년 3개월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새삼 코이카 단원의 임기가 짧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즈베키스탄에 오기 전 보다 더 나아진 것 없이 나이만 두 살 더 먹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퇴보할 수도. ​ 기차 안에서 밖의 풍경이 한국에서 보는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라 찍어서 친구에게 보내니(아, 물론 산을 넘어갈 때는 통화도, 3G도 되지 않는다. 저 사진을 찍고 두 시간 뒤에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저런 풍경을 매일 보고 사는 것도 축복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게, 정말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에 너무 익숙..

제목없는 글

(1) 그들의 휴강 사유: "Ustoz(선생님)! 오늘 저희가 11시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요. 그래서 한국어 수업을 못해요." 친구가 결혼해서, 오늘 친구 생일이라, 그냥 날이 좋아서 등 참 다양한 이유를 들어 결석하는데 가끔은 아예 본인들이 휴강을 '통보' 하기도 한다. 오늘 쪽지 시험 보기로 했는데....... 덕분에 오늘 방과후 중급반 수업 준비할 시간이 늘어서 좋긴 하지만 뭔가 찝찝한 이 기분을 지울 수가 없네.

읽은 책

1. 우르겐치에서 건넨 인사 (이강철, 우즈베키스탄 한국어 교육분야 봉사단원) 2. 오아시스에서 잠을 깨다 (송영일, 우즈베키스탄 국제협력의사) 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개) 4. 아잔의 숲 (김우진, 이집트 한국어교육분야 봉사단원) 5.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6.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사계절) 7. 동물농장 (조지오웰) 8.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9. 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10.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알렉시예비치) 11. 내 생애 단 한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고기복, 지식채널) 12. 행복한 나라의 조건 (마이케 반 덴 붐, 푸른숲) 13. 간송 전형필 (이충렬, 김영사) 14. 백석 평전 (안도..

마음이 어지러운 날들

​​지치는 날이 있다. 학생들이 기쁨을 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맡은 학생이 많다보니 기쁘게 하는 아이들의 수도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기관이 전혀 협조적이지 않거나 코워커와 갈등이 있는 단원도 있는데. 그런 케이스에 비하면 나는 참 행운아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머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누구도 공감해주지 못하는 일. 결국 내 스스로 이겨내는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