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해외봉사/In Uzbekistan

[한국어교육] 어느 한국어 선생님의 일상

정개 2017. 5. 6. 07:56


7시. 소파에서 눈을 뜬다. 어제 소파에 누워서 카톡을 하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이런, 오늘은 4빠라나 있는 날인데. 급하게 아이들에게 나눠 줄 유인물을 인쇄할 준비를 한다.

8시. 프린트를 하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역사학과 학생들에게 줄 프린트 5장, 초급 2반 학생들에게 줄 프린트 23장, 초급 1반 학생들에게 줄 프린트 35장을 인쇄한다. 출석부에 올라와 있는 이름은 더 많지만 몇 번 당한 뒤로 조금만 복사를 한다. 제발 복사한 만큼 학생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선임이 나눠 준 잉크로 과연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10시 20분. 이런! 오늘도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늦었다. 결국 걸어서 20분 걸리는 거리를 택시를 탄다. 29분에 택시가 도착했다. 원래 콜택시 기본 요금은 2500솜인데, 이 택시기사가 5000솜을 줬더니 2000솜만 거슬러 준다. 500솜 더 달라고 따지고 싶지만 지각은 면했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택시에 내려서 시계를 보니 34분.

10시 40분. 오늘은 우즈벡어학과 수업이 있다. 여학생 두 명이 수줍은 듯 문을 두드린다. 한동안 안 오더니 저번 시간부터 다시 오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그렇게 여학생 두 명을 시작으로 하나, 둘 한국어 교무실에 들어온다. 11시. 하나, 둘 , 셋, 넷 ... 아홉. 오늘은 아홉 명이 수업에 왔다. 이정도면 양호하다. 한동안은 하루에 2명, 3명이 와서 가르칠 의욕을 잃었었다. 과연 이번 학기 동안 23명을 전부 볼 수 있을까? 23명 전원 출석은 너무 큰 바램이겠지.


정규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을 따로 배정받지 못해 매일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다 '어차피 학생도 조금인데 내 교무실에서 수업해도 되겠다' 싶어서 교무실로 오게 했다. 칠판이 없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그룹과외 같고 학생들의 집중도도 더 높다. 서로서로 모르는 걸 도와가며 문제를 푼다. 칠판은 집에 있는 미니 화이트 보드를 가지고 오면 해결 될테니 당분간은 교무실에서 이렇게 수업하면 될 것이다.

아직도 공책을 '공잭'이라 쓰고, "선생님 '가방' nima? (뭐예요?)" 라고 물어서 날 뒷목잡게 하지만 저번 시간에 온 애가 안 온 애를 가르쳐 가며 문제를 푸는 걸 보니 당분간은 우즈벡어반은 고민할 일이 없겠다 싶다.

10시 50분 수업이 끝나고, 그 다음은 역사학과 수업. 건물 앞에서 역사학과 반장이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너 왜 한국어 수업 안 듣고 집에 가?'라고 묻고 싶지만 잡지 못한다.


역사학과도 한 22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중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다섯 명 정도 된다. (우즈벡어학과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한 지 세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모든 학생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수업에 매일 나오는 학생은 사진 속의 다블라트요르(좌)와 무함마드라술(우) 둘 뿐이다. 언어의 장벽(?)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하지만 점점 '눈빛'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인문학부 남학생들은 그래도 가끔은 옷을 편하게 입고 오는데 이 역사학과 두 남학생은 항상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수업에 들어 온다. 다블라트요르는 검은색, 무함마드라술은 갈색 양복을 차려 입고서 말이다.

오늘은 늘 앞자리에 앉는 다블라트요르, 무함마드라술 뒤에 만수르도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우즈벡어과에서 서울대 1A 워크북이 만족도가 높아 몇 장 인쇄해갔더니 역사과 삼총사도 꽤 재밌어하는 눈치다. 앞으로는 주교재 Oson 1 책과 병행해서 부교재로 서울대 1A 워크북을 써야 겠다. 이렇게 또 요령이 하나씩 는다.

4빠라 수업이 있는 날은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없다. 점심 때 즈음 학교 2층에 식당 아주머니가 오셔서 쌈싸를 파시는데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아주머니께 수줍게 다가가 "Ikkita kartoshka Somsa bering." (감자 쌈싸 2개 주세요.)이라고 말하면서 1000솜짜리 지폐 한장을 내밀면 비닐봉지에 쌈싸 두 개를 넣어 주신다.

2시. 정규 수업이 끝났지만 아직도 방과후 수업이 2개나 남아있다. 하지만 오전 수업이 아무 탈 없이 잘 끝나서인지 아직 체력이 남아 있다. 오늘은 일찍 와서 교무실에 앉아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 늘 이렇게 해야 하는데...... 대개는 수업에서 에너지를 다 써서 쉬는 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이나 핸드폰만 본다. 좀 더 체력을 길러야겠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지치지 않도록.

오늘은 초급 2반과 초급 1반 수업이 있다. 원래 초급 2반은 하루 평균 25명 정도 참석하고 초급 1반은 하루 평균 32~33명 정도 오는데 요즘 날이 좋아서 그런지 평소의 70%정도만 수업에 왔다. 하... 초급 1반 프린트 35장 뽑아 왔는데... 열 장 넘게 남는다. 하지만 평소보다 수업 분위기는 훨씬 좋다. 학생들이 듣기가 약한 거 같아 오늘은 90분 수업하는 동안 집중적으로 듣기 문제만 같이 풀었는데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아직 1급 수준의 학생들이다보니 '다음 중 맞는 것을 고르시오.'와 같은 '문제'를 일일이 우즈벡어로 설명해야 했는데 선생님이 우즈벡어를 잘 해서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이해력이 뛰어나서인지튜 모르겠지만 다들 척척 이해하고 문제를 잘 풀어냈다.


제목은 '어느 한국어 선생님의 일상'이라 적었지만 그냥 내 하루는 수업으로 시작해서 수업으로 끝나는 거 같다. 특히나 초반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시험지 채점에 학생들 글쓰기 첨삭하느라 개인 시간은 보낼 엄두가 잘 안났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그런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현지어 공부도 틈틈히 한다.

우즈벡 사람들은 항상 만날 때마다 'Yaxshimisiz?'(좋습니까- 잘 지냅니까?)라고 묻는다. 어떤 날은 'Yaxshi emas(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좋지 않았던 날보다 좋았던 날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하루, 하루가 모여서 아름다운 2년이 되기를.